평등원(뵤도인)의 역사와 복원 연대기

평등원(뵤도인)의 역사는 복원의 역사라고 불릴 만큼 오랜 세월을 거쳐 진행되어 왔는데 이러한 수리와 개조가 현재 사원 양식의 일부가 되었습니다. 평등원(뵤도인)은 후지와라노 요리미치(992-1074)에 의해 1052년에 설립되었습니다. 우아하고 화려한 극락정토의 세계를 표현한 봉황당(호오도)과 아미타여래상은 일본 사회에 정토 신앙을 전파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.
초기에는 사원 경내가 지금보다 큰 규모였다고 전해집니다. 1336년 구스노키 마사시게(1294–1336)가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이끄는 군대와 싸우면서 평등원(뵤도인) 주변에 화재를 일으켰고 광대한 경내의 많은 탑과 불당이 불에 타버렸으나, 다행히 봉황당(호오도)은 소실되지 않았습니다.
메이오 시대(1492-1501)에는 평등원(뵤도인)의 복구를 위해 정토원(조도인)이 세워졌습니다. 1640년에 나한당(라칸도)이 건축되었고 1654년에 최승원(사이쇼인)이 설립되었습니다. 1670년에 봉황당(호오도)의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졌으며, 이때부터 정토종의 정토원(조도인)과 천태종의 최승원(사이쇼인) 두 종파가 협력하여 평등원(뵤도인)을 관리하게 됩니다.
그러던 중 1698년 우지 대화재가 발생하여 사원의 많은 곳이 크게 손상되는데, 그 여파로 봉황당(호오도)의 우아한 벽화가 낙서로 뒤덮이게 됩니다. 이후 메이지 시대(1868-1912)에 다시 수리 및 보존 운동이 시작되어, 봉황당(호오도)의 운중공양보살상이 수리되었고 쇼와 시대(1926-1989)에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집니다. 믿음과 복원의 역사 속에서 봉황당(호오도)과 아미타여래 좌상에 이어 범종, 운중공양보살상, 천개, 봉황당(호오도) 중당의 여닫이문 그림 등이 차례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.
복원 과정에서 몇 가지 정교한 기술이 장식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. 봉황당(호오도) 앞의 연못을 발굴하는 동안에는 에도 시대(1603-1867) 지층에서 귀중한 연꽃 씨앗도 발견되었습니다. 정성스럽게 돌본 결과 씨앗이 발아되었고 방문객들은 이제 평등원(뵤도인)에서 이 독특하고 소중한 연꽃을 즐길 수 있습니다.
2001년에는 뮤지엄 봉상관(호쇼칸)이 문을 열었습니다. 이후 몇 년 동안 사찰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문화유산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방문객들이 극락정토의 세계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경관과 조경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. 봉황당(호오도)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방해되는 건물이 배경에 없어서 헤이안 시대에 표현된 극락정토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이 쌓아온 믿음을 편안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.